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상하이 사변 (문단 편집) === 중일 양측의 피해규모 === 한달간 벌어진 싸움에서 일본은 9만명의 병력과 군함 80척, 항공기 300대를 동원했으며 공식적으로 634명의 전사자와 1,791명의 부상자를 냈다. 중국군은 5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공식적으로 1만 3천명의 피해를 냈는데 중국은 일본군이 최소 5천명의 피해를 냈다고 주장했다. 우스이 가쓰미의 만주사변에 따르면, 당시 중국 피해는 사상자 1만 4326명, 일본 피해는 사상자 3091명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그 넓은 만주에서 일본군은 500명도 안되는 전사자를 냈는데 상하이의 중국군은 만주의 50만 대군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전과를 올린 셈이 되겠다. 후지와라 아키라는 일본군의 상하이 작전에 대해서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군 9사단 7연대 대대장 구칸 노보루 소좌가 전투 중에 중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정전 이후 소환되었고 수치심에 자결하는 일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